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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가이드 『특집』 구상미술의 새로운 시각

 현실 세계의 일상적이며, 평범한 주제를 찾아 사실적, 객관적으로 표현한 화파라고 사전적 의미로 규정하고있는 한국의 사실주의는, 아카데미즘의 회화로 불리면서 구시대적인 유물인양, 서양학문의 추종자이며 현대미술을 하는 전위적인 작가들과 비평가들에게 홀대를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한국의 사실주의 작가들은 사실주의라는 말보다는 조금 더 고상한 구상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를 모면하려 하였고, 사대사상 속에서 한잔의 술과 예술을 논하고 삶을 노래하면서 자칭 멋스러운 예술가임을 자칭하여왔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조류와 현상에 대해 외면과 회피 , 밀려오는 서양의 현대미술을 피해나갔다. 그렇게 회피하며 안일만을 추구하는 자세에서 보다 전문가로서 철저하게 연구 분석하면서 새로운 사실주의의 개념을 정리, 정립하려는 자세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구태의연한 사실주의 작가들은 그런대로 팔리는 구상작품으로 지금껏 연명하고, 문화센타를 점령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구상미술은 아주머니들의 점유물이 되었다. 또한 어설픈 암기로 2년정도 석고뎃상을 하고 미술대학에 입학한 미술학도들은 ‘이제는 뎃상이 지긋지긋해’하며 다른 서양 현대 미술사조로 줄행랑을 친다. 뎃상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아카데미즘의 본연의 의미와 객관적 실체조차 무시하거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상누각을 짓는 무모한 감행이 지금껏 시도되고 있는 실정이니 한국 화단의 미래는 누가 책임지겠는가?

 

한국에 서양화가 도입되면서 일본으로 유학간 어느 미술학도의 일화는 현재 우리나라 구상미술계의 상황을 재론하게끔 한다. 일화는 지극히 단순하다. “교수(일본인)님, 석고 데상을 하면서 왜 한쪽면을 까맣게 칠해야 합니까?” 라고 따졌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써는 생소한 서양화의 명암법과 고착화 되어져 있는 수묵의 공간과 눈에 보여지는 입체적 시각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나쁘게 보면 서양학문에 대한 절대적인 추앙의 실체이며, 실제 이렇게 배워온 한국의 최초 서양화는 일본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답습하여 우리나라 미술대학의 뿌리를 내렸고, 인상파적인 고전은 모사적이고 재현적이며(풍경이든 인물이든 대상을 베끼는) 왜곡된 형식중심의 인상적인 경향으로써 한국의 사실주의로 정착되어져 있다.

 

 새로운 미술을 찾고자 한다거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상미술의 일대 변혁을 가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한국에 상륙되어져 있는 현재의 미술양상을 직시하여, 한국만의 독특한 양식의 미술을 만들 기본적인 토양이 조성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토양에 맞는 미술은 사실주의라 주장하고 싶다. 그러면서 내면의 진실을 포착하는 구상미술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여기서의 구상미술具象美術은 Figurative art가 아닌 사실주의(realism)를 말한다.- 구상미술은 그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사실을 주장하면서도 작품들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재현하면서 색상이나, 느낌이 심각하게 포함되어져 있다고 말한다(리얼리티reality란 의미에 대해 똑같이 베껴내는 것으로 오인한 것에서부터 비롯된). 기실 구상미술이란 “보이지 않는 감흥이 포함되어져야 하며, 혹은 보이더라도 실재적 삶의 양상이 포함되는 실체”를 그려내는 것이다 .보여지는 모든 대상의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인간 삶의 발전이 지식의 축적에 있다고 볼때. 미술 역시 최소의 기술력(뎃상력-그러면서도 느끼는 무엇인가를 표현해 낼 수 있는 기술이 포함된)연마가 필요하다. 기술력이라는 것은 막연히 보이는 것을 똑같이 베껴내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당신의 작품은 무척 잘그리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것들이 손끝에서 발생되는 기술이 고작이군요”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세계미술시장의 한자리를 차지고 있는 작가들중에 한 그룹이 아카데미즘을 건실하게 구축한 중국작가들이라고 하는 현실을 직시해 볼 필요가 있다(젊은 중국작가들의 반발의 소산으로 추앙되는 현대미술 바람이 거세게 일고있지만). 건실하게 뿌리내린 아카데미즘 속에서 사실주의 미술이 엄연히 공존하고 굳건하게 자리하기에 그러한 젊은 중국작가들과 더불어 중국미술은 한층 더 발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시 한번 우리나라 미술의 현장을 돌아보자. 좁은 미술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그림으로써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써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현실을 돌아보라! 구상미술을 하고 있는 나 자신 스스로도 가끔 초라해 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아카데미즘 혹은 기초적 기술력 연마를 위한 뎃상을 배우려 들겠는가 하는 말이다. 한국의 유학파 즉 전위적인 현대 미술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예술행위와 작품이 구상미술보다 앞서 있다고 주장하고 ‘그 정도 소묘력(묘사력)이면 되었으니’ 다른 작업을 해 보라 권한다. 뎃상의 무용론과 뒤쳐진 구상미술을 버리라 한다. 구상미술 역시 지극한 현대미술임을 알아야 한다. 단지 내용적 측면에서 고답적인 베끼기에 충실한 나머지 현대미술속에서 이론적인 정의 정립이 약할 따름인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한국의 구상미술품에 대한 대안 없이 항상 제자리에서 뜀박질만 해오지 않았던가.

 

 최근 한국에는 러시아나 중국의 아카데미즘을 공부하고 온 작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한국 구상미술 화단에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익힌 아카데미즘이 한국의 정서에 토착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무용지식에 불과할 것이다. 구상미술인들 스스로가 깨어나 함께 연구해야할 과제가 산더미이다. 이러한 연구 및 공동체적노력을 통해 현대 한국미술의 한켠을 당당히 지키고 후진들의 앞날에 희망을 만들어 줘야 한다. 작가의 직관으로 보여지는 대상을 통해 각 개인이 추구하는 진리나 현실에 대한 진실, 개성의 표현과 생명력 그리고 창조적 작업세계 속에서 진선미를 그려야할 것이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마다 노력하고 연구하는 전문 미술인으로서 자세를 갖추고 작업에 몰입하여야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형식미 탐구나 테크닉을 익히고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기술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그리고 왜 그리고 있는가하는 본연의 질문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한다.

 

 창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미술가들은 누구보다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해야한다. 한국 현대 미술(구상미술)의 실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그 핵심을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하여야 한다. 한국 특유의 자연과 환경의 조화로 소박한 조형세계를 이루어 온 한민족의 순수한 자연의 미 속에서, ‘진경산수’의 사실주의 위업을 만들어낸 무한한 가능성을 더욱 발전시켜 세계무대로 도약해야 한다. 역사가 증명하는 지리적인 특징으로서 반도국에서의 르네상스를 상기할 때, 한반도에서 제2의 르네상스가 태동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랴?

 

 한국이 주도하는 미술문화 융성의 시대를 기다리며 한국의 미술인 모두는 온 정렬을 쏟아내며 작업해야만 한다. 한국인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세종대학교 동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미술과 강사,1995년 ~ 2001년 신세계 문화센타 강사. 청가운화산업대학 강사. 대한민국 미술대전 및 신미술대전 대회장상, 구상부문 최우수상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 이사. 사단법인 목우회 사무국장. 신작전회 운영위원. 그룹 휴먼 운영위원으로 활동중이다.

백두정상Ⅰ,Ⅱ,Ⅲ,Ⅳ 의미

백두정상 시리즈의 작품들은 우리민족이 갖는 단절된 아픔, 아쉬움 등을 담고 있다. ‘백두정상Ⅰ’에서는 총을 매고 있는 북한 국경 수비대 군인의 경계근무하는 모습에서 범접하지 못하는 갈라진 땅의 아픔을 표현하려 하였고, ‘백두정상Ⅱ’에서는 그곳에서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고 싶은 우리네 마음을 조망하는모습으로 표현하였으며, ‘백두정상Ⅲ’에서는 북한의 어린병사 역시 관심을 보이는 호기심어린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마지막으로 ‘백두정상Ⅳ’에서는 남파로 오르는 백두산의 광활함 속에 홀로 국경을 지키는 한 사람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광개토태산이라 명명한 2007년도 작품은 북으로 북으로 말달리던 고구려의 기상과 광개토대왕의 넋을 기리며, 모진풍파를 견디고 일어서는 한민족의 강한 기운을 표현하려하였다.

백두와 한라를 거닐다

 2007년과 2008년 두 번에 걸쳐 백두산 풍경 전시를 가졌다. 모두 백두산 정상의 풍광을 통해서 한민족의 역사의식을 되새기는 작품으로 남기를 원했다. --보라! 백두산을 오르는 세갈래 길목중에서 남파로 오른 백두산의 정기를! ... 대륙으로 뻗어가는 힘이 그대로 전해져 오지않는가? 혹여 북녘 땅에서 조망한다면 광활한 대지를 향해 질주하는 광대한 꿈은 담덕만이 갖었던 꿈은 아닐것이다. 지름0.5㎝의 국경선을 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숨가쁘게 풍광을 기록한다(2007년도 작품전 작가노트) --

 

동생 : 부모님은요?

형 : 돌아가셨단다.

동생 : 누님은요?

형 : 청주 누님은 서울에 와 계시고 서울 누님도 잘 계신다.

오늘 여기에는 오시지 못했구나, 우리를 알아보겠더냐?

동생 : 눈매를 보니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변하셨습니까?

형 : 세월이 그렇게 안됐냐.

동생 : 큰형님 앞에서 담배 피워도 되겠습니까?

형 : 피우거라, 너도 이제 60이 아니냐 ?

 

 --- 어느고향 방문단의 상봉현장에서 ---

 

 “ 이제 다시 못 볼 텐데 어떡해...” 지난 11월 5일 긴 기다림 짧은 만남을 끝으로 언제 다시 만나랴는 불가능한 기대를 뒤로한 채 통일 되는 날까지 억지로 살아 있겠다고 다짐하며 시공을 초월한 삶을 이어가려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는 현실속에서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신선처럼 백두대간을 떠도는 꿈을, 백두와 한라를 아주 가깝게 거니는 꿈을 꾸고 공중부양하여 백두대간과 한라까지 마음 편하게 거니는 마음을 그렸다. 그토록 갈망하는 펼쳐진 풍경을 있는 그대로 서정적으로 그렸다. 북으로 백두산을 향해 치닫는 마음은 보다 신속하고 절절하게 그리려고 하였으며, 남으로 한라산을 아우르는 마음은 차분히 풍광을 음미하려고 하였다.

 한민족의 현실의식에 따른 내일의 다짐으로 남기를 원한다.

 

 겨레의 숨소리가 장엄하고 수려한 백두산 천지에서부터 우러를수록 더 높아지는 한라산의 백록담까지 울려 진동하는 날! 그날을 기다리며......

제자리를 찾기 위한 습작

 그녀의 이름은 Sarah Simione!

흔쾌히 모델이 되어준 그녀!

 

 그녀가 내게 보낸 마음을 담은

 " Oh my god, I love it!!!!! That's incredible Young, thank you!!!"

 그녀는 더 없는 기쁨으로 달려와 " hug...... --; "

 

 그녀의 나이는 21살 나의 영어 선생님이다.

 언어와 문화를 전공한 그녀는 부모의 슬하에서 독립해서 영어를 가르치며, 미래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가끔 어두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 날이면 수업하는동안 나도 함께 어두워지곤 한다. 그녀가 즐겁거나 활짝웃으면 사랑스러워서 그리지 않고는 미칠것 같았다........( 1996년도에 서울갤러리에서 전시한 김인승화백을 만난적이 있었다. 팔십이 훨씬 넘은 노대가는 본인의 작품 중 한복입은 여인?을 설명하면서 하와이에서 만난 여인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신혼여행온 신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고와서 그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고, 미칠것 같았다고... 고민 고민하다 신랑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부를 그렸다고 한다. 노대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한 동안 “그리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라고 한 순수한 노화백의 말에 대해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미치기 전에 닦치는 데로 그리기로 작심도 했었다. 어쩌면 이것 저것 집적대며 그리는 버릇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이곳 뉴욕의 빠르게 움직이는 환경에서 무언가를 낚기위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가장 가까이 있는 그녀에게서 마음속 깊이 자리한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계기를 갖게 되는 건 아닌지.. 아마도 제 자리를 찾기 위한 작가의 순수한 감정을 발견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어린시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기억으로, 왕십리에 사시는 이모 할머니댁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도심속에서 감나무를 키우는 이모할머니는 꽤나 부유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커다란 마루에서 소형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녹음된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신기해 했고 TV 그리고 선풍기를 처음 보기도 했던 가물가물한 기억이 있다. 감나무 잎새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던 그렁그렁한 감들은 빨갛게 달아오르는 순수한 어린 소녀의 붉은 볼 같았다. 가지 사이사이에 매달린 예쁜감을 따보려고 했지만 키가 작아서 그럴 수 없었다. 감나무에 기어 오르려고 했던 것도 같다. 감나무가 약해서 가지가 쉽게 부러진다는 것을 도심에서 자란 나로서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45년이 지나가는 그토록 오래된 기억을 다시금 하게한 것은, 가슴속에 자리한 붉게 점화된 소녀의 향기로운 숨결같은 감나무의 기억을 애틋한 사랑으로 캔버스에 옮기면서 부터이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잊혀지지 않는 감나무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두 눈 깊은 곳에 영상으로 맺히고, 누군가의 가슴 깊은 곳에 자신이 심장인양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충남 부여 출신의 시인 이재무는“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붉은 눈물/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라고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노래했고, 조선족 시인 김철은“열매를 들고 섰는 늙은 감나무”를 보면서“가지가 휘도록 맺힌 (어머니의) 그 사랑”을 떠올리게도 하는가 보다.

‘정보화’를 그리다

 컴퓨터는 생활의 필수품이며 개인간의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다. 세상은 컴퓨터를 통해 읽혀진다.

컴퓨터를 통해 전달되는 사물의 이미지를 컴퓨터 자신은 어떻게 읽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컴퓨터가 상상하는 사물의 이미지 해석을 작가입장에서 대변하듯이 적고 그리기로 하였다.

사물의 이미지가 컴퓨터 문자파일로 보여지며, 그 글자의 나열은 읽을 수 없고 해석할 수도 없다.

이러한 해석불가능한 문자의 숲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음데로 소리내서 읽어보고는 군데 군데 해석 가능한 기호,문자, 낱말 혹은 글등을 삽입하여 컴퓨터의 해석으로 바꾸어 놓는다. 컴퓨터와 작가를 동일시하기도 하는 이러한 작업을 나는 ‘정보화’라 칭하려고 한다. 진리를 향한 삶의 정보를 느낄 수 없는 공간에서 찾아보고, 기계인 컴퓨터를 통해서 사물을 해석하고 또다른 이야기를 전개해 본다. 작가의 감성을 대변하기도하는 이러한 정보화는 내게 있어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마을 어귀

 마을 어귀는 문이다. 마을 어귀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마을 어귀는 과학과 자연의 경계선이다.마을 어귀는 이성과 감성의 경계선이다.

 마을 어귀는 욕심과 욕기를 버리는 출발점이다.마을 어귀는 새로운 것의 시작이다.

 그래서 마을 어귀는 설레임이다.

 세상의 무어든지 시작이 있고 들어섬의 처음이 있다.내딛는 첫 발자욱에 따라 그끝이 그려진다.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쉬어가게도 하고 눌러 앉게도 하는마을 어귀의 저마다 다른 표정에서 구 수한 삶의 진리를 찾기도 한다.

 들어섬의 경계에서 쉬어감의 그늘을 만들어주는 정자나무가 보이고낯선이를 애써 반기는 개들의 짖 음과 닭의 외침 그리고 소들의 울음소리가 정감있게 불어온다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고도 부족한 것을 채우려 잠시도 쉴 수 없는 각박한 현실속에서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기원하며,

 토닥이며, 장이야! 멍이야! ...아이들의 울음소리 웃음소리의 여유로운 풍경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금 도시인들에게 필요한 보다 건강한 삶의 답안일 것이다.

 마을 어귀의 연작을 통해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신인상주의의 전통적 기법을 빌어서 또다른 표정의 풍경화를 제작해 본다. 풍경화라는 주제가 갖는 진부한 이미지이지만 진부한 과거 속에서 정신의 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때인 것이다. 인간의 삶이 서로 소통하는 경계로서 마을 어귀라는 풍경화와 이제 이곳에서 많은 대화와 정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요하게 숨죽인 마을 어귀 너머로 새로운 세상이 있다. 도시의 삶을 잠시 접고 잠깐동안의 자연과 자연인으로서의 합일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쉬어가도 괜찮을 것이다. 너무도 황량한 하루하루를 달래기 위한 이곳에서의 사색이 새로운 삶의 지평이 되기를 바라며, 기대하며, 잊혀져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편안한 마음으로 그려본다.

브라질 민족의 굳건한 틀, 문화 “삼바”를 바라보다.

 매년 1월 말에서 3월초 브라질에서는 세계적인 축제 리오 카니발이 성대하게 열린다. 고대 로마 그리스 이교도들이 기독교적 억압과 권력과의 갈등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행하던 의식을 발전시킨 것으로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형식을 지니게 되었다. 흥겨운 삼바 리듬, 정열적인 춤, 화려한 의상의 무희들, 휘황찬란한 각종 퍼레이드. 브라질의 정열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축제는 브라질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최고의 축제로 찬사 받고 있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환상적인 몸부림이라고 하는 축제중의 축제인 삼바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아픈 역사 속에서 탄생하여 자유를 갈망하는 인류의 진정한 가치실현으로 인정받고 있다.

 

 리오 카니발과 삼바가 브라질을 대표하는 문화라고는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일년에 한 번 한마음으로 축제의 일탈을 즐기며 어려운 현실과 지난해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치료제 기능으로 더 강하게 작용한다(브라질 인구 4천만 이상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고, 2천 5백만이 빈민촌에서 거주 하고 있으며, 천 2백만의 버려진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사육제를 통하여 억압된 본능을 해소하고 공동체의 응집력을 재확인하게 되며, 이 후 규범적인 일상으로 되돌아가 자신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안전장치인 것이다. 하여 그들은 삼바를 마음의 안식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해석하기에 매년 카니발을 위하여 삼바 학교에서는 특색 있는 의상과 춤을 준비한다.

 

 삼바는 문화정체성을 바탕으로 노예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승리, 풍요와 화합 그리고 자유 등 한민족의 생성과 현재, 미래를 교훈적으로 조명하듯 구성되어 있다.

 리오 카니발과 삼바는 브라질 민족자존의 틀이 되었고, 브라질 국민은 그 틀 위에서 과거를 반성하며 현실을 살고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 축제를 통하여 성스러움과 세속의 통합을 이루어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힘 즉, 초월적인 에너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브라질의 역사와 정신적 가치는 카니발과 삼바를 매개로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고 세계사에 바르게 자리 매김 해나가고 있다. 뒤르켕이 규정하듯이 축제란 공동체 의식을 획득하기 위하여 기능하는 일종의 종교적 형태이며 혁명과는 달리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 받아 결국 현실로 회귀하는데 목적이 있다.

 

 거대한 과학문명과 정보의 홍수로 급속하게 변모하는 사회에서 축제와 같은 전통적인 문화유산은 국가적 문화정체성을 유지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월드컵 경기는 우리에게 이미 축제가 지닌 파급효과를 경험하게 하였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진정한 가치를 지닌 축제를 통하여 공동체 의식의 강화와 정체성을 재확인하려는 분위기 조성은 절박하다...... 한민족의 뚜렷한 틀을 갖추고자, 굳건한 민족혼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블루(Blue)연구

 ....나는 나에게 파란색으로 묻는다.

 냉정과 이성을 위한 고립인가 화려한 내일을 꿈꾸기 위한 즐거운 상상인가?

 울릉도와 독도 여행은 나에게 사색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주었으며, 일상적이고 답습적인 캔버스에 단순하지만 다양한 제시를 하게 해주었다. 프러시안블루(Prussian Blue)를 버린지 꽤 온랜기간 코발트블루(Cobalt Blue)와 울트라마린블루(Ultramarin Blue)가 전부였던 팔레트위에 스카이블루(Sky Blue), 시루리안블루(Cerulean Blue), 네비블루(Nave Blue)가 더해졌다.

 

 울릉도와 독도 여행은, 역사의 한 단면속에 잠깐 동안 자신을 던져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독도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렇듯 가까이서도 그리운 섬이 또 어디 있었던가? 강력한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로 국경 수비대원을 치장해야하는 이유를 몸소 체험하는 여행이 되었으며, 울릉도에서의 파란바다는 스카이블루(Sky Blue)와 시루리안블루(Cerulean Blue)의 파란 꿈을 꾸게 해주었다. 파란색의 답을 가져다 주었다. 파란색의 작업복을 입고 캔바스 앞에 서면, 마치 군복을 입고 맨바닥을 구르는 듯 편하다. 파란색은 새로움이며, 마음의 평화이며, 영원한 사랑이다. 한동안 작업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중 그동안 생각하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고 있다. 새로운 작업을 위해서 우울한 시간을 버리고, 편하게 작업한 몇 점의 작품으로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을 갖어 본다. 지속적인 작업을 하기위하여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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